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4F 와일드캣 (문단 편집) === vs [[A6M|제로센]] === [youtube(9pwaZ7gT63M)] 앞서도 언급되었듯 사실 와일드캣은 제로센에 비해 외견상의 피상적인 스펙비교로는 상당히 떨어지는 전투기이다. 속도, 상승력, 선회능력 등 대부분의 수치에서 와일드캣의 카탈로그 스펙은 제로센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간다. 대표적으로 제로센과의 대결에서 와일드캣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상승률은 제로센이 와일드캣의 1.5배 가까이 된다.[* 와일드캣 F4F-4, 11.7m/s vs 제로센 21형, 15.7m/s.] 저런 사항들 탓에 1:1 전투라면 제로센이 와일드캣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의 와일드캣 대 [[제로센]]의 실제 전과는 '''무기의 실전에서의 효용은 결코 피상적인 스펙상의 수치나 [[일기토]]적인 1:1 대결에서의 우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의 하나이다. ||[[파일:external/fineartofdecalsimages.s3.amazonaws.com/F4F-Wasp-TheHookCover.jpg|width=100%]]|| || 항공모함 [[와스프급 항공모함|와스프]] 함상의 F4F-4 와일드캣과 [[SBD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 일단 와일드캣은 '''[[그거 먹는 건가요|"방어력 그거 먹는거죠?"]]'''였던 제로센보다는 훨씬 훌륭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와일드캣은, 제로센은 '''전혀''' 갖추고 있지 않던 조종석 방탄판이나 캐노피의 방탄유리, 연료탱크의 자동방루 설비 등을 충실히 갖추고 있었다.[* 제로도 A6M5 을형부터 방탄판과 방탄유리 방루탱크와 함께 연료탱크 자동 소화 장치를 장착한다.] 와일드캣의 캐노피 전방 방탄유리판의 두께는 무려 70mm. B-17 폭격기의 전방 글라스콕핏의 40mm 보다 두껍다.[* 물론 전투기의 캐노피가 폭격기의 전방 글라스콕핏에 비해 방어면적이 훨씬 좁아, 중량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대부분의 경우 폭격기 보다 전투기 쪽이 더 두꺼운 방탄유리를 사용했다.] 물론 제로센은 아크릴 판이다.[* 물론 2차 대전 시기면 항공기 방풍유리로 '플렉시 글라스' 즉 [[아크릴]]수지가 주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크릴 판이다.] 즉 이를테면 와일드캣과 제로센이 헤드온으로 서로 사격한다면, 와일드캣의 경우라면 제로센의 7.7mm 기총은 엔진과 방탄유리에 막혀, 적어도 조종사는 안전할 수 있지만, 와일드캣의 .50구경 기관총을 '그냥 아크릴 판'으로 받아내야 하는 제로센의 조종사는... 그리고 다른 미군 전투기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와일드캣 등이 사용하던 미 해군의 자동방루 탱크는 전쟁기간 동안 12.7mm급 기총탄의 피해는 충분히 버텨냈고 경우에 따라서는 20mm 기관포탄을 맞아도 연료누출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제로센은 자동방루 설비도 없는데다, 항속거리를 늘이려고 그런 무방비의 연료탱크를 주익까지 설치해 치명적 피탄부위를 널찍하게 늘려 주었다.[* 참고로 원래 기관총은 사격 중 탄도를 보며 조준을 보정하기 위해 4~5발당 한발씩 예광탄을 섞어넣게 되어있다. 그리고 공중전에서는 일반탄이나 철갑탄보다는 항공기의 내부구조에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는 탄종, 즉 기관총이라면 소이탄이나 철갑소이탄, 기관포라면 고폭탄 계열이 선호되었다. 미군 뿐 아니라 일본군 제로센도 마찬가지 탄종구성을 하고 전투에 참여했다. 즉 알면서도 이랬다는 것.] 제로센 에이스로 유명한 [[사카이 사부로]]는 자신의 저서 '제로'에서, 와일드캣과의 전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나는 '그루먼'을 파괴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7.7mm 기관총만으로 적기를 끝장 낼 결심을 했다. 그래서 20mm 기관포의 스위치를 꺼짐 위치에 놓고 잠가버렸다.[* 왜 20mm를 꺼버렸는지도 중요한데, [[A6M]] 문서에서 [[A6M#s-7.6|무장의 효율성]] 항목을 보면 20mm 1호 기관포는 탄도와 탄속부터 개판이다. 아니면 이미 피해를 입은 적기를 상대로 (a6m2는 1문당 60발 밖에 탑재 못하는) '귀중한' 20mm 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5-6백발의 기관총탄을 그루먼에 직접 퍼부은 다음에도 적기는 추락하지 않고 계속 날고 있었다. 그런 일은 처음 겪어본 일이라서 나는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루먼에 손을 뻗어 닿을 거리까지 접근했다. 놀랍게도 그루먼의 방향타와 꼬리날개는[* 그럴 수 밖에 없는게, 40년대 초반 기술로는 보통 보조날개를 금속 프레임에 캔버스를 씌워서 제작했다. 와일드캣도 예외가 아니었고.] 넝마처럼 너덜너덜하게 찢겨나가 있었다. 비행기의 상태가 그렇다면, 파일럿이 전투를 계속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 제로센이 그렇게 총탄을 맞았다면 이미 불덩어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http://acepilots.com/planes/f4f_wildcat.html|#]] 게다가 와일드캣에 장착된 6정[* 미드웨이 해전부터 주력 함상기로 활동한 F4F-4 부터는 6정. 그 이전 형식인 F4F-3은 4정.][* 다만, 안 그래도 엔진 파워가 떨어져서 느린데 2정 더 다느라고 무게가 늘어나서 바깥쪽 2 정은 치우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6정으로 만드느라 각 기총의 장탄수도 줄어서 실상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 그러나 -4의 의의는 수납성이 대폭 올라갔다는 데 있다. 본격적인 날개접이 기능이 -4부터 되기 시작한다.]의 12.7mm 기관총은 발사속도도 빠르고 탄도도 곧은 신뢰성 높은 무장이었기 때문에 제로센 같이 장갑이 튼튼하지 못한 일본 전투기들을 상대로 유용했다.[* 이전까지는 미군기도 7.62mm 기관총 혹은 7.62mm와 12.7mm의 혼용 같은 무장을 했지만, 해군기로는 와일드 캣의 바로 앞 세대인 [[F2A 버팔로]]부터, 육군기로는 [[P-40]]부터 2차 대전기 미군기에 일반화된 12.7mm 기관총 중심의 무장으로 바뀐다.][* 제로센도 무장들만 놓고 보면 꽤 중무장으로 보이지만 7.7mm 기총은 F4F를 단박에 격추시키기엔 화력이 모자랐고 20mm 기관포는 발사속도도 낮은 편이었고, 특히 탄도와 탄속이 다른 20mm들에 비해 썩 좋지 않아 전투기를 상대로는 명중율이 낮았다. 기체 한 대 위쪽 쯤을 겨냥해야 한다고. 물론 이는 기관포만의 문제가 아니라 극단적인 경량화 설계로 인해 제로센의 주익이 기관포의 반동을 제대로 버티지 못해 조준이 흐트러지는 탓도 컸다. 이후 보다 견고한 기체구조를 지닌 [[시덴]]이나 [[라이덴]]을 탑승한 조종사들이 탑재된 같은 기관포를 사용해보고, '이 기관포가 이렇게 잘 맞는 물건인 줄 몰랐다'고 깜짝 놀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만 기관포 탑재량이 60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약간 부적절한 감이 있다. 제로센 만이 아니라 [[Bf109]]E형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스핏파이어]]V형도 기관포 탄약수는 문당 60발로 제로센과 차이가 없었다. 물론 나중에는 저 두 기종이 문당 120발 이상씩 적재하고(109의 경우 기관포를 1문으로 줄이고 200발 적재) 제로도 a6m5(을,갑형)에서는 기존의 드럼탄창에서 벨트급탄식로 바꿔 문당 125발총 250발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방어력과 화력에서의 우세가 없었다면, 제로센 공략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 [[타치 위브]] 같은 전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타치 위브]] 전술이 가능한 건 무전기가 제대로 들어가 있다는 것도 작용했다. 부실한 기체강도를 제외한 '''제로센의 최대 약점이 바로 무전기다'''.] 또한 제로센의 구조적 문제점에서 발생하는 내구성 문제로 인한 급강하 성능의 부실과 고속도에서의 조종성의 불량, 무전기를 통한 유기적 편대전술 실행 불가능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실전에서 와일드캣이 제로센에게 일방적으로 열세에 놓이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2차 대전 초반으로선 준수했던 1200마력대 엔진에 2속 2단 2-speed, 2-stage 수퍼차저를 사용하여 고공에서의 성능은 쓸만했다.[* 주 적수이던 제로센에 비해 고공성능이 특별히 우수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임무고도는 약간 더 높다. 하지만 와일드캣의 고공성능은 다른 측면에서 중요했는데, 그것은 전쟁 초반 미 육군항공대의 주력이던 [[P-40]]이나 [[P-39]]등이 고공성능이 형편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소수의 [[P-38 라이트닝]] 정도를 빼면, 해군의 와일드캣만이 일단 제로센이 날아다니는 고도까지 올라가서 제대로 싸우는 게 가능한 미군의 전투기였던 것. 물론 이 모든 게 결국 따지고 보면 이를테면 나름 [[P-39|쓸만했던 원작]]을 개량한답시고 '고공 고자'로 만들어 놓는 짓 따위를 한 NACA([[NASA]]의 전신)탓....] 특히 방어력과 화력 만큼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제로센]]의 급강하 성능의 문제 역시 와일드캣과 제로센의 전투에서 피상적인 스펙과는 딴판인 결과를 낳는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 본질적으로 레시프로 시대의 전투기들은 오늘날의 제트 전투기와 비교한다면, 순수한 엔진추력에 의한 급상승이나 급가속 등에 훨씬 더 많은 제약을 갖는다. (물론 상승력에는 양력도 중요한 요소지만 양력에 대한 요구와 속도에 대한 요구는 종종 충돌한다.) 때문에 당시의 공중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리미리 높은 고도를 선점하고, 이렇게 얻은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 속도로 바꾸는 것이었고, 그렇게 고도의 우위-속도의 우위를 이용해 상대를 급습하고 이탈하는 (그리고 다시 그것을 고도의 우위로...→ 반복) 일격이탈의 "[[붐앤줌|붐 앤 줌]](Boom and Zoom)"이 가장 보편적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기체강도가 사망이라 강하속도를 630km/h 남짓으로 제약해야 했던 제로센[* 제로센은 후기형도 강하 제한 속도가 670km/h 정도였다. 물론 후기형이 나올 때의 태평양 상공은 이미 와일드캣의 후계기이자 강하속도 700km/h 대 초중반의 [[F6F 헬캣]]과 강하속도 700km/h 후반에, 수틀리면 800km/h도 찍어대는 [[F4U 콜세어]]가 점령하고 있을 시점이다. 그리고 이 둘 다 급강하 속도는 900km/h 대를 찍는 기종들이다. 700km/h, 800km/h라는 강하속도는 급강하시 속도가 아닌 일반강하시 속도다.]은 기껏 우수한 상승력으로 고도를 확보해도 그것을 충분한 속도로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강하시에 제대로 속도를 붙일 수 없다는 것은 빠르게 다시 고도를 획득할 때도 문제가 된다. 제트시대의 전투기들이 [[F-15]], [[F-22]] 등 4세대, 5세대 전투기라면 대체로 "1.0"이상의 추중비를, [[F-4 팬텀 II|F-4]]등 3세대 전투기라고 해도 대체로 0.7~0.8의 추중비를 내는 강력한 제트엔진으로, 초당 2-300미터 이상을 상승하는 것과 비교하면, 엔진출력에 더해 양력으로 상승해야 하는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프로펠러 전투기들의 상승속도는 - 설령 [[Bf109]]나 [[P-38 라이트닝]]등 당시 최고수준의 상승력을 자랑하던 기종이라 해도 - 그 10% 남짓한 상승 속도 밖에 낼 수 없었다. 즉 만일 '붐 Boom' 하고 강하하며 사격 한 다음 후, 열심히 프로펠러 돌려 지속상승력만으로 고도를 회복하려면, 엔진에 전시비상출력을 걸어가며 뺑이를 쳐서 상승해도 1000m 회복하는데 1분 가까이 걸린다는 것. 그 상승력 좋다는 Bf109라도 말이다. 이런식이라면 공격주도권은 고사하고 상승에 에너지를 쓰느라 두둥실 두둥실 천천히 떠오르는 동안 아주 먹음직한 표적이 되어 목숨이 위태롭다. 물론 이런 바보짓을 하는 파일럿은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사망|금방 '없어졌을 것'이다...]]) 당연히 강하하면서 생긴 속도에너지를 이용 (거기에 엔진출력을 더 보태) '줌 Zoom' 하고 타력상승으로 급상승해서 고도를 회복한다. 그리고 붐에서 줌으로 전환할 때 기체와 조종사에게 가장 강한 G가 걸린다. 기체강도가 괜히 중요한 게 아니란 말씀.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이나 전투기를 논할 때면, 아주 약간만 깊게 들어가도 '(급)강하속도' 떡밥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 [[P-51]]이나 Fw-190, [[F4U]](콜세어의 분당 상승률은 깡 엔진출력+넓은 익면적 & 낮은 익면비중의 힘으로 Bf-109, Fw-190은 물론 아군 전투기까지 통틀어 가장 좋다.)등 2차 대전 후반의 공인 깡패들이 괜히 뛰어난 게 아니다. 올라 갈 때도 쭉쭉 올라가지만 내려 꽂힐 때도 마하 0.7-0.8로 거의 음속을 돌파할 기세로 내려 꽂힐 수 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만 잘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 경우 남는 장사를 한 쪽은 그나마 내려꽂힐 때는 빠른 녀석들이었다. 대표적으로 [[P-47]]처럼. 물론 P-47이 '떨어지기만 잘 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유럽전선 기준이다. 제로센과 비교하면 P-47의 지속상승률이 더 좋다...(물론 이는 평균수치상 그렇다는 것이고 고도에 따라, 모델에 따라 세세한 유불리가 또 발생한다. P-47 후기형은 상승률에서 독일기도 쌈싸먹는다.) 이래서 '닥치고 엔진!'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괜히 [[T-62|맥주통에 달아놓아도 상관없으니까]] [[P-47|2000마력짜리 엔진을 단 전투기를 내놔!]]를 외쳐 댄 게 아니다. [* 급강하속도를 제약하는 것은 엔진파워와 항력문제도 작용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기체의 강도와 그리고 또한 고속에서의 조종성이다. 제로센은 '중요한 두 가지'가 다 시망이었다. 시속 300km 근처면 벌써 둔해지기 시작하는 고속기동성이 급강하 때는 어떨까. 즉 한 번 잘못 다이브하면, 먼저 조종이 둔해져 제한속도가 가까워진 것을 알고 '어이쿠 [[난 여기서 빠져 나가야 되겠어]]'하고 조종간을 당겨도... 기체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꾸물거리다 보면... 어느새 630km/h. 날개 표면이 쭈글 쭈글 해지기 시작하고 그 다음 날개가 떨어져 나가던가 아니면 아예 기체가 공중분해... 이는 비단 객관적인 기체의 한계로 인한 전술적 제약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에 더해 '심리적'인 문제도 들러붙는다. 1942-43년 시점에 '630km/h'라는 속도는, 유럽전선의 1선 전투기들은 수평비행에서도 내던 속도였다는 건 두 번째고, 태평양의 적수인 와일드캣은 강하하면서 툭하면 기록하는 속도였다. 즉 전투중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는 속도였다. 그런데 그 속도에서 '날개가 부러지고 공중분해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속도계에 '빨간줄이 그어져 있는', 과장해서 말하자면 기수 한 번 잘못 숙였을 뿐 인데 곧장 [[야스쿠니]]행 [[포탈]]을 타게 되는 비행기를 몰고 있는 파일럿이라면 그 이하의 속도라고 마음 놓고 과감한 공중기동을 시도할 수 있을까? 때문에 아예 미군은 제로센 대응 교본에 조차 대놓고 '기체강도와 가속에 대한 심리적 영향으로 제약받는 고속기동으로 끌어들여라'고 써놓고 있다.[[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intelsum85-dec42.pdf|#]]] 반면 애초 와일드캣은 '철공소' 제품에 걸맞는 견고한 기체강도에[* 앞서도 언급되었듯, 8.5G의 가속도를 견딜 수 있다.], 제로센보다 훨씬 묵직하고 익면하중도 높아[*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어떤 경우에도 장점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당시로도 상승력과 선회력의 열세를 낳는 요인이었지만.] 떨어지는 속도만큼은 제로센보다 훨씬 빨랐다. F4F-3의 경우 772km/h.[* [[http://pwencycl.kgbudge.com/F/4/F4F_Wildcat.htm|#]] 덧붙여 뒤의 F4F-4 항목에서도 언급되지만 접히는 주익을 채택해 중량이 증가, 대부분의 비행성능이 더 떨어진 F4F-4에서는 하지만 강하속도는 더 빨라졌다고... 또한 급강하시 시속 500마일(800km) 이상도 냈다는 이야기도 접할 수 있다.] 덧붙여, 와일드캣은 기체강도를 믿고 '''아예 '제한속도'라는 걸 설정해 놓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http://planesandpilotsofww2.webs.com/Grumman.html|#]][* 해당 문서의 다섯번째 문단에 있다.. 내용만 들고 와보면 이렇다. ''''the airframe was so strong that it didn’t have a red-line limit''''] 이렇게 된 이유는 사실 와일드캣이 '''느렸'''고 '''튼튼'''했기 때문이다. 워낙 항력이 많이 발생하는 구조라 급강하(고도가 줄어들면 당연히 공기 밀도가 커지고, 이렇게 되면 기체 항력이 급강하 속도를 제한하는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 고공 급강하의 경우는 역시나 엔진 파워지만.)하는 도중에도 기체가 부서질 정도로 속도가 붙지를 않았기 때문(...)에 급강하 최고속도 따위 메뉴얼에 안 써도 되었던 거다. 그런데 [[제로센]]은 이 조차 따라가지 못 했으니 그거대로 굴욕이다. 즉 고도의 우위를 빼앗겨 제로센에게 먼저 일격이탈의 기회를 내 줬다고 해도 와일드캣은 (고도의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더 빠른 강하속도로 제로센을 떨쳐내고 퇴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로센의 급강하 속도는 기체강도가 향상된 후기형 A6M5에서도 740km에 그쳐 끝끝내 와일드캣을 따라잡지 못했다.[* 제로센 52형 중 날개재질을 좀 더 두껍게 사용한 52형 갑(甲) 부터 그리고 전폭기형인 A6M7 62. 그런데 이 정도의 급강하 속도는 사실은 두 기체가 맞붙던 1942-1943년 기준으로 쳐도 '2부 리그' 전투기들의 도토리 키재기에 해당한다. 왜냐면 유럽전선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싸우던 미 육군항공대는 [[P-38 라이트닝|P-38]]의 형편없는 실적을 평가하며 미군은 '우리 전투기는 급강하시 마하 0.68(833km/h) 밖에 못 내는 쓰레기인데 [[Bf109]]나 [[Fw190]]같은 독일전투기들은 마하 0.75(918km/h)까지 가속한다' 툴툴거렸기 때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Lockheed_P-38_Lightning#European_theater|#]] 그러나 유럽전역에선 [[P-47 썬더볼트|P-47]]나 [[P-51 머스탱|P-51]]이 배치되자, 한발 앞서 비슷하게 망한 [[Bf110]]과 마찬가지로, 결국 전투폭격기로나 사용되던 문제의 '쓰레기 같은 라이트닝'이 태평양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참고로 태평양 전쟁당시 미 해군, 해병대가 사용한 전투기 중 가장 확실한 '메이저 리그급 전투기'라고 할 수 있던 F4U 콜세어의 경우 이미 시제기인 XF4U-1 시험비행 시절 조종면의 손상 없이 890km/h의 급강하 속도를 버티는 기염을 토했다.[[https://en.wikipedia.org/wiki/Vought_F4U_Corsair#Development|#]] 전반적인 성능에서 콜세어에 못 미치는 F6F 헬캣도 역시 시속 550마일 (880km)이상의 급강하속도를 냈다고 한다. 물론 이 분야의 일인자인 [[P-47 썬더볼트|P-47]] 정도가 되면 매뉴얼상 제한 속도가 마하 0.8, 즉 960km/h에 이르며, 실전에선 그 이상의 강하속도를 낸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간신히 그나마의 개선을 달성한 시점에서는 이미 태평양 상공엔 와일드캣 정도가 아니라 [[F6F 헬캣]]이나 [[F4U 콜세어]]가 드글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방어력이나 강하속도 보다는 덜 중요한 이점이지만 '롤 Roll' 성능의 우위도 지니고 있었다.[* 초기형인 F4F-3과 제로센 초기형 - 하지만 가장 많은 양산댓수를 지닌 - A6M2-21의 롤레이트를 비교하면 F4F-3의 롤레이트는, 시속 160마일(256km)에서는 제로센과 대등하며 속도가 높아질 수록 우세해진다. F4F-3은 시속 154마일(246km)에서 롤레이트가 56d/s(degree/second), 시속 240마일(384km)에서 69 d/s이며, 시속 340마일(544km)에선 62d/s인데 비해, 제로센 A6M2-21의 경우엔, 시속 240마일에서 55d/s, 시속 380마일(608km)에선 42d/s로 고속으로 갈수록 롤 성능이 저하된다. (NACA Report No.868[[http://naca.central.cranfield.ac.uk/reports/1947/naca-report-868.pdf|#]] 43페이지. 매우 분량이 많은 문서이므로 누군가 이미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http://forums.eagle.ru/attachment.php?attachmentid=114116&d=1425439263|여기]]를 참조. 정리한 사람이 F4F-3을 F3F-3으로 잘못 표기한 건 무시하자.) 때문에 와일드캣은 조종사가 제로센의 특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 특히 롤-다이브 기동을 통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는 고속에서의 조종성에 문제와 마찬가지로 제로센의 에일러론 때문인데, 문제는 이 에일러론이 또한 저속에서의 미친 선회능력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http://www.chuckhawks.com/1v1_zero_wildcat.htm|#]] 즉 제로센이 꼬리에 붙으면 (기관총탄 몇 발 정도는 튕겨내며) 롤 기동으로 사선에서 벗어난 후, 빠른 강하속도로 빠져나가는 것. 참고로 제로센에게 기총사격을 당한 후 간혹 연기를 뿜으며 롤 - 급강하로 빠져나가는 와일드캣을 보고 일부 일본군 조종사들이 격추라고 착각한 것도 전쟁 초기 제로센의 전과에 대한 과장된 평가에 일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게 제로센이었다면 그런 경우 분명 불타는 미트볼이 되었을테니 와일드캣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 [[A6M#s-5.1|아쿠탄 제로]] 이후 미군이 제로센을 테스트해 본 결과를 바탕으로, 제로센에 대응한 전술개발에서 반드시 참고할 사항으로 '고속에서의 제로센의 느린 롤-레이트'를 언급한다. F4F 와일드캣의 경우에도 제로센을 상대할 때는 급강하에서의 우위 또는 고속시 롤 성능에서의 우위에서 혹은 둘을 결합해 이득을 얻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intelsum85-dec42.pdf|#]] 물론 그에 앞서 권장하는 것은 상호협동과 내부방호력의 우위를 활용할 것, 빠져나오거나 제로센의 선회능력이 기체강도에 의해 제약받는 고속기동으로 끌어들일 것 등이다. 한 마디로 [[타치 위브]].] 또한 F4F-4부터 뒤로 완전히 접히는 날개 덕분에 같은 항모에 함재기를 더 실을 수 있으므로 항공전력 전반의 전투력 향상에도 기여하였다. 제로센의 경우는 엘리베이터에 맞춘다고 끄트머리 살짝 접는게 전부였다. 또한 카탈로그 스펙은 와일드캣보다 제로의 성능이 더 우수하긴 하지만 실전에서는 조종사의 실력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사카이 사부로]]의 자서전에는 제로센과 3대 1로 싸우면서 오히려 제로기 1대를 격추해버리는 [[제임스 서덜랜드|서덜랜드 소령]] 의 와일드캣에 대한 언급이 있고, 제트기와 미사일 등의 정밀한 전자장비가 도입되기 전이니 만큼 조종사들의 실력이 기체의 성능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와일드캣이 굴러다닐 땐 일본군 파일럿들에 비하면 마땅히 베테랑 파일럿이 부족했다는게 문제였고, 이 점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차츰 개선해나가게 된다. 또한 방어력, 화력과 함께 와일드캣이 제로센에 비해 결정적인 우위를 가지는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와일드캣은 무전기를 통해 유기적으로 편대가 협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를 통해 와일드캣은 둘 이상일 경우 처음 만나는 파일럿이라고 해도 문제가 생기면 즉시 연락을 해 보호받거나 보호할 수 있었고 대규모 편대가 맞붙을 때도 확연한 이점으로 다가왔다. 때문에 두 기체의 성능 비교에 대해, 제로센에 후한 평가를 하는 이들도 1:1싸움에서는 기동성이 뛰어난 제로센이 유리하지만 2:2의 경우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주기에 일방적인 꼬리물기가 불가능하기에 화력과 방어력에 우위를 지닌 와일드캣이 유리하다고 평가하며, 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이 무전기라고 말한다.[* 사실 당시 무전기 성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와일드캣의 파일럿들은 제로센의 파일럿들처럼 콕핏 밖으로 손을 꺼내 수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됐다.] 거기에다가 존 S. 타치 대령이 고안한 '''일명 제로 서치 전술 [[타치 위브]]'''로 두 기의 와일드캣이 꽈배기 꼬듯이 비행을 하면서 서로의 꼬리를 지켜주는 전술 등 제로센을 상대하기 위한 적합한 전술 들이 도입되면서 교환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타치 위브]]가 처음 등장한 미드웨이 전투 당시 와일드캣 4기와 제로센 10기가 맞붙어 와일드캣 1기를 잃는 동안 제로센 3기를 격추하며 가능성을 선보였는데, 미드웨이 전투 이후에 정식으로 채용되면서 제로센을 사냥하였다. 그 외에 지상기지와 연계된 작전에서는 저공성능이 뛰어난 [[P-39 에어라코브라]]와 [[P-40]]을 [[떡밥]]으로 던져서 이를 본 제로센이 저공으로 내려오면, 훨씬 더 고공에서 대기중이던 와일드캣이 급강하하면서 때려잡는 [[낚시]]성 전술도 사용되었다.[* 당연히 P-39조종사들은 툴툴거렸다. 그래도 당시에는 방법이 없었다. [[사보 섬 해전]]으로 미군 함대가 줄줄히 용궁행 되었던 상황인데다 [[산타 크루즈 해전]]으로 미 항모 전단도 상당한 피해를 본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탱킹을 하도록 내몰린 것.] 특히 과달카날 전투 동안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레이더]]와 솔로몬제도 섬들에 배치된 [[https://en.wikipedia.org/wiki/Coastwatchers|해안감시대]] 덕분에 조기경보 능력에서 우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와일드캣을 이용한 '고공매복' 전술은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이렇게 미군 조종사들이 실전에 적응해가기 시작하며 최종적으로 와일드캣과 제로센의 교환비는 '''1 대 1.5'''가 되어 와일드캣이 밀리는 성능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격추비를 역전하고 만다.[* 덧붙여, 이 전과의 대부분은 대체로 1942년에서 1943년 사이, 즉 [[산호해 해전]] 부터 [[과달카날 전투]] 정도 까지의 기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1943년 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후계기인 [[F6F 헬캣]]의 생산 및 배치 속도가 워낙 깡패였기 때문에 이미 1943년 중반 쯤이면 일선 항모기동부대의 와일드캣은 거의 대부분 헬캣으로 교체되어 호위항모부대로 전환 배치 되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전 기간동안 미 해군이 수령한 와일드캣은 그루먼에서 생산된 오리지널 F4F-3 과 F4F-4, 제네럴 모터즈에서 생산된 FM-1, FM-2를 모두 합쳐 6,699기이다. 그러나 그 중 그루먼사가 헬캣의 양산에 집중하기 위해 와일드캣 생산을 종료한 시점까지 생산된 그루먼제의 '오리지널' F4F-3와 F4F-4는 각각 285대와 1,169대, 합쳐서 1,454대에 불과하다. 여기에 1942년 10월 초도비행을 한 제네럴 모터즈 생산분의 FM-1 838대를 합쳐도 미 해군이 헬캣 배치 이전에 수령한 와일드캣의 숫자는 2,292기에 불과하다. 사실 와일드캣 전 형식 중 가장 많은 숫자가 생산된 것은 GM에서 4,777대가 생산된 ~~와일드한 와일드캣~~ FM-2인데, (그중 미 해군에 공급된 것은 4,407대, 나머지는 영국 해군에 공급) FM-2는 그루먼이 이미 헬캣 생산을 위해 와일드캣 생산을 중단한 1943년 중반 이후 생산에 들어가 대부분이 호위항모부대로 배치되었다. 그에 비해 헬캣의 첫 양산형 F6F-3는 1942년 10월 첫 비행 후 1944년 4월 까지 1년 반 정도 기간 동안 무려 4,402기가 생산되었다. (이후 개량형 F6F-5와 기타 소수 버전을 합쳐, 1945년 11월 까지 12,275를 찍어낸다. 그 대부분 - 11,000대 이상이 1943년 부터 2년 동안 생산된 숫자다.) 대체로 1943년 이후 그루먼의 헬캣 생산량은 매달 400-500기에 달했다! 이런 빠른 생산속도에 힘입어, 헬캣은 1943년 2월 항모 에식스에 배치되는 것을 시작으로, 앞서 말했듯 1943년 중반이 되면 이미 일선 항모기동부대에서 와일드캣을 대체한다. 실상 과달카날 전투를 거치며 한동안 태평양에서 활동하는 미 해군의 항모가 [[엔터프라이즈]] 한 척 뿐이던 시기까지 있었으니, 그 이후 배치된 [[에식스급]] 항공모함들은 대부분 헬캣과 함께 바다에 나섰다고 봐도 될 것이다. ([[호위항공모함]]을 제외하고, 30노트 이상의 고속을 낼 수 있는 [[인디펜던스급]] 경항모 역시 와일드캣이 아닌 헬캣을 운용했다.) 신규 항모의 취역과 함께 태평양 전역에 나선 헬캣은 1943년 9월에 첫 격추를 기록하고, 동년 11월의 라바울 전투와 타라와 전투에 참여, 각각 50여기와 30여기의 일본기 격추를 기록하고 다음해 1944년 6월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필리핀 해전에서 제로센을 상대로 무쌍을 찍으며]] 태평양 상공에서 일본기의 씨를 말리기 시작한다. 또한 1943년 2월 부터 미 해병대의 와일드캣들 또한 [[F4U 콜세어]]로 교체 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태평양 전쟁 후반 호위항모부대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한 와일드캣 FM-2의 경우 총 격추수는 422기 정도인데, 전황이 전황이니 만큼 그 다수는 일본군 전투기보다는 [[카미카제]] 자살공격기였다.[[http://www.collingsfoundation.org/aircrafts/grumman-fm-2-wildcat/|#]]] 대전 초 제로센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인간승리|결국엔 와일드캣이 1대 격추될때 제로센은 1.5대가 격추된 것이다]].[* 일본기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체 공중전 손실/격추 비율은 1942년 동안은 1 대 5.9, 전쟁 전 기간동안은 1 대 6.9.[[http://en.wikipedia.org/wiki/Grumman_F4F_Wildcat|#]] 따라서 1 대 1.5라는 교환비는 공격기나 수송기등에 대한 요격을 제외한 적 전투기와의 교전에서의 교환비로 사실상 제로센과의 교환비라 생각해도 무리는 없을지 모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쩌다 일본군의 함재기가 아니라 육상기와 교전했다 해도 당시 일본 육군의 주력 단발기는 [[Ki-43 하야부사]]. 성능으로나 외형으로나 많은 미군 파일럿이 두 기체를 헷갈렸던만큼, 전과보고엔 '제로센'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죽어서도 고통받는 하야부사~~] 물론 이 교환비는 전쟁 전 기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제로센의 전성기이자 또한 와일드캣이 미 해군, 해병대의 주력 전투기로 제로센에 맞서 가장 크게 활동했던 1942년 5월에서 11월 까지 [[산호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투까지의 기간 동안의 전적을 살펴보면 산호해 해전과 [[미드웨이 해전]]까지 와일드캣과 제로센 사이의 공중전에서 손실은 와일드캣 10 대 제로센 14, 과달카날 전투에선, 일본 라바울 항공대와 미 해병 1항공대, (일명 "[[캑터스 항공대]]") 사이의 공중전에서는 각각 제로센 72기와 와일드캣 70기를 손실했고, 함재기간 공중전에서는 제로센 43기 손실에 대해 와일드캣 31기 손실로 1942년 5월 에서 11월 사이의 기간동안 와일드캣과 제로센의 공중전에서 와일드캣 총 111기 손실에 대해 제로센 129기 손실로 와일드캣은 이미 이 시점의 전투에서 제로센을 상대로 근소한 우세를 기록하고 있다.[* Edward Young, "F4F Wildcat vs A6M Zero-sen: Pacific Theater 1942][* 특히 이 시기까지는 태평양에서 활동한 와일드캣 이외의 미군 전투기라고 해봐야, 역시 와일드캣보다 나을 게 전혀 없는 육군의 [[P-40]], [[P-39]] 정도(랜드리스용이었지만 인기가 없어 남아돌던 P-400을 포함해서) 밖에 없던 시기이다. 더 구형의 [[F2A 버팔로]]도 미드웨이 해전까지 사용되었고. 따라서 1942년 5월 ~ 11월 사이의, 산호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역의 주요 전투와 산타크루즈 해전까지의 전투는 '와일드캣 vs 제로센'의 실제 전적을 평가하기에 가장 적절한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미군의 전투기 중 와일드캣 보다 낫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던 것은 [[P-38]] 정도이지만, 태평양 전역에는 1942년 11월 이후에야 소수가 배치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배치된 P-38도 역시 초기엔 육군항공대 조종사들이 제로센이나 하야부사 등 일본 전투기와 어떻게 싸워야 효과적인지 파악하지 못한 덕에 잠깐 삽질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압도적인 성능에 걸맞게 '라이트닝 에이스'를 줄줄이 배출했고, 태평양 전역 미 육군항공대는 한동안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라이트닝 빨리 더 보내주세요'를 외쳐댔다. 물론 그 이유는 당시 생산된 P-38 대부분은 유럽전역에 우선 배치되고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제로센과 와일드캣이 한참 싸우던 대전 초기, 일본군은 실전을 경험한 최정예 파일럿들 이었지만 미군 조종사들은 이렇다할 공중전 경험도 없었으며, 태평양 전선은 인적, 물적으로 2선이었다. 거기다 미국이 전시생산체제로 전환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항공기와 함선을 쏟아내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 태평양에서 미군 전투기보다 일본군 전투기가 더 많았음을 생각하면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수준의 전과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은 결국 질적 열세를 견디지 못하고 [[공세종말점]]을 맞이하며 [[과달카날 전투|과달카날]]을 기점으로 짜부라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와일드캣 보다도 고성능기인 [[F6F 헬캣]], [[F4U 콜세어]], [[P-51 머스탱]]이 일선에 배치되자 격차가 더욱 벌어져버리며 [[시망|완전히 망했다]]. ||[[파일:external/guadalcanal3.homestead.com/colour_Wildcat_on_Canal_2.jpg|width=100%]]|| || [[과달카날 전투]] 당시 "헨더슨 비행장"에 주기 중인 와일드캣들[br]{{{-2 1942년 전반~1943년 초반까지 와일드캣이 가장 치열하게 최일선에서 활약하던 시기의 도장과 마킹 패턴을 볼 수 있다.}}} || 그래도 헬캣이 배치될 동안은 제로센과 대등하게 맞설 해군의 주력전투기는 와일드캣이었고 수많은 방어책을 연구해보는 등 오만가지 노력을 해야했다. 와일드캣이 헬캣으로 교체되기 전까지가 딱 제로가 태평양에서 위엄을 떨치던 시기였으니. 종합하자면 와일드캣은 당시 상대하던 제로에 비해 비행성능에선 열세이긴 했지만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그 단점들을 메꿀 수 있었다. 나아가 표면적인 스펙상의 수치나, 순수한 1:1 대결상황에서의 우열과, 다수 대 다수가 맞부딪히는 실제 전장에서 작전행동의 구성요소인 병기로서의 유용성은 언제나 등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례이다. 분명 와일드캣은 비행성능에선 제로센에 뒤쳐졌다. 하지만, 튼튼한 기체 강도와 효과적인 화력구성, 정교한 조직적 전투를 가능케 한 통신장비, 함재기로서의 적재성[* 다만 제로센 처음 만나서 고생해던 F4F-3형은 날개가 접히지는 않았다.]까지, 공중전을 수행하는 병기, 즉 "전쟁을 위한 항공기"로서의 종합적인 능력에선, 제로센 보다 실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아직 베테랑 조종사들을 다수 보유한 일본군에 비해 인적자원에서도 열세였고, 당장 전역에 배치될 수 있는 항모와 항공기의 물량에서조차 열세였던 태평양 전쟁의 초반, 일본군의 예봉을 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며, [[미드웨이 해전]]에서 [[과달카날 전투]]에 이르는 태평양 전쟁 초중반의 전황 반전의 분수령이 된 주요 전투에서 미해군 항공전력의 주축으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동시대의 [[Bf109]]나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혹은 2차 대전 전반의 공중을 지배한 걸출한 미군 전투기들 처럼 화려한 성능을 자랑할 기종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낸 전투기라고 말 할 수 있다. 비교하자면 [[영국 본토 항공전]]의 숫적인 주력을 이뤘던 [[호커 허리케인]]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복엽기로 개발되었다가, 단엽기로 재설계된 것도 비슷하다.] 그리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와일드캣에 탑승했던 미군 조종사들은 방호력과 생존성에 신경 쓴 든든한 기체 덕분에 '''조금''' 피탄 당해도 살아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전쟁 초반, 더 날렵한 기체를 모는, 무엇보다 훨씬 더 노련한 일본군 조종사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앞서 각주에 언급된 사카이 사부로의 회고에서도 나타나듯) 와일드캣은 꼬리날개가 찢겨나가고, 날개가 구멍투성이가 되거나, 혹은 엔진이 연기를 뿜고, 조종패널이 박살이 난 상태에서도 기지로 돌아와, 조종사를 생환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제로센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단 비행기의 차이 뿐 아니었다. 미군 조종사들은 일정 근무시간과 격추수를 쌓아 베테랑 조종사가 되면 규정상 후방으로 돌려져 후임 파일럿들을 교육하고 그 후임들이 다시 전장에 나서며 숙련도를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리고 [[F6F 헬캣|언니보다 훨씬 더 무서운, 악몽과도 같은 동생]]을 데리고 전장에 돌아왔다. 반면 일본군 파일럿들은 부상을 입거나 드물게 휴가를 받기 전까진 대체로 죽을 때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도 좀 난감한데, 일본군은 연합군과는 달리 파일럿의 원래 계급이 병계급이면 어지간해서는 병계급으로 계속 유지시킨데다가 파일럿의 진급에 대해서도 소태처럼 굴었다.] 그것도 몇 발만 잘못 피탄당하면 불덩어리가 되기 일쑤인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말이다.[* 심지어 여기엔 '장점'조차 악재로 작용하여, 제로센의 긴 항속거리만을 믿고, 과달카날 전투에서 처럼 말도 안되는 장거리 임무에 투입되는 경우, 안 그래도 내구도가 떨어지고, 신뢰도 역시 부족한 기체가 피탄이나 고장을 일으킨 경우, 조종사가 살아돌아올 확률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숙련된 조종사 다수가 항공모함 대신 [[죽음|야스쿠니로 재배치]]되며, 조종사의 질적 격차는 전쟁 초반과 정반대로 뒤집혀, 베테랑들을 상대로 허둥대다 격추당하는 초짜의 역할은 미군에서 일본군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무전기마저 개판이라 동료에게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다.] 나아가 와일드캣은 적절한 시기에 후계기가 등장해 [[바통]]을 넘겨주고 1선기에서 물러날 수 있었다. 후계기의 개발이 지연돼서 울며 겨자먹기로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날아다니며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칠면조]] 신세가 된 제로센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명예로운 퇴진이었다. 그러나, 이를 단지 '와일드캣은 운 좋게 제 때 후계기가 나와 험한 꼴을 안 보았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이다. 사실 2차 대전 전 기간 동안 날아다닌 것은, [[Bf109]]나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기체는 꾸준한 성능향상으로 언제나 1선기로서 충분한 성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로센의 최후가 비참해진 이유는, '''후계기도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태평양 전쟁 내내 우려먹혔음에도 불구하고 [[옆그레이드]] 수준의 개량 밖에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후계기가 제 때 나오지 못한 이유도, 개량다운 개량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모두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이 더 고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필수적인 고출력 엔진을 제대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제로센이 딸리는 성능으로 전쟁 말기까지 날아다니며 수모를 당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제로센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귀결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저사양 엔진에서 비행성능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된 무리한 원가절감, 급강하하면 안 되는 골다공증의 허약한 기체강도, 맞으면 타오르는 방어력 등 제로센 그 자체가 문제투성이였고 후계기도 제대로된 업그레이드도 없이 맞이한 최후는 그저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제로센 자체의 한계와 직접 연관된 것이었다. 반면 좀 더 고출력의 엔진을 탑재한 와일드캣의 강화버전 격의 전투기[* 초기엔 고속, 고성능의 [[F4U 콜세어]]의 보조 전투기로, 고성능이지만 숙련된 파일럿이 아니면 다루기 약간 까다로운 --굽은날개의 '''소위제거자'''--콜세어에 비해, 초보 파일럿도 좀 더 다루기 쉽고, 신뢰도와 생존성이 좋으며, 또 생산이 용이해 동맹국에도 공급하기 쉬운 전투기가 원래 목표였다.]를 개발 중이던 그루먼은, 마침 이착함 문제로 인한 콜세어의 전력화 지연과 맞물려, '이왕 쓰는 김에, 아예 콜세어나 썬더볼트 처럼 2000hp 짜리 엔진을 달아버리면 어떨까'라는 미 해군의 요청을 받는다. 크고 아름다운 R-2800 더블와스프 엔진에 맞춰 이리저리 만들다보니, 결국 기본적인 짜임새는 비슷하지만, 기체 자체도 엔진에 맞게 크고 아름답게, 아예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 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름도 새로 붙였다. 이름하여 ''''[[F6F 헬캣]]''''이라고. 그렇게, 제로센의 초반운을 꼬아놓은 걸림돌 같은 녀석을 바탕으로, 이번엔 제로센의 말년을 비참하게 만든 본격 재앙이 탄생한다.[* 사실 그루먼이 와일드캣에도 적용된 컨셉을 완전히 벗어난 완전한 새로운 컨셉으로 개발하던 것은, 헬캣이 아니라 [[F8F 베어캣]]이었다. 헬캣의 개발이 와일드캣이 채택된 직후인 193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듯, 베어캣의 개발 역시 미국이 전쟁이 뛰어들어 2차 대전시대의 공중전을 직접 경험한 직후인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중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공중전을 다룬 시즌1 3화에서, 와일드캣 vs 제로센의 전투를 비교적 잘 소개하고 있다. [[https://youtu.be/gXXk83jimu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